서사가 실종되고, 소리의 맥이 끊긴 대한민국 소설계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대하소설 <금강>의 출간을 앞두고. 김홍정 작가(59)가 소설의 무대인 금강 1천리(396킬로미터)를 20일간에 걸쳐 걸었다. 중종반정(1506)에서부터 병자호란(1636)에 이르는 150여 년 동안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민중의 이야기를 그린 <금강>은 <임꺽정>(홍명희)과 <토지>(박경리)의 계보를 잇는 선 굵은 역사소설이 될 것으로 출간 전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홍정 작가가 <문학뉴스>에 보내온 금강 완주기 중 주요 내용을 추석 연휴기간을 시작으로 모두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전체 완주기는 연말쯤 별도의 책자로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대하소설 <금강>의 김홍정 작가)
금강 가에서 사람들이 살았다. 무리를 지어 집을 짓고 조개를 캐거나 강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 열매를 따 먹기도 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더니,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장사를 했다. 자신들이 살던 지역에 침범하는 다른 세력들과 맞서 싸웠다. 당나라 군사와도 싸우고, 왜구와도 맞서 싸우고, 수탈하는 권력자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동학군이 되어 진격했고, 보수상단과 유림들은 그 동학군을 막으려 했다. 일제의 수탈로 쌀을 뺏기고 자식들을 굶길 수 없어 깻묵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해방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이념의 갈등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왕촌의 살구쟁이 피해자와 정안천, 유구천 천변에서 죽은 좌익이라 몰린 사람들이나 대추골에서 죽임을 당한 우익의 사람들도 모두 금강의 슬픔을 함께 지닌 자들이다. 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들춰볼 참이다. 다만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기 바랄 뿐이다.
강물이 흐르고 강 옆으로 길을 내고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오르내리며 살았다고 노인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김성선 대장과 조수남 부대장은 길에 대해 의미 있는 증언을 한다.
“넓은 길이 필요 없어요. 길은 그저 발걸음을 뗄 수 있는 정도의 폭이면 되지요. 그러면 첫 사람이 걷고, 다음 사람이 걷고 그다음 사람이 걸으면 저절로 폭도 넓어지고 길도 단단해진다니까요.”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이 금산 방우리 늪지와 계곡길부터 대열을 이끌고 걷기 시작할 참이다. 각 지역에서 함께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리라 기대한다. 시작할 때는 열 사람이 걷다가 한 달이 지나 이 행사를 마무리할 때쯤에는 천 명이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독도 사진작가로 알려진 이정호가 의미 있는 현장 사진들을 그림처럼 그려낼 참이다. 그의 사진들은 자연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글에 곁들인 사진들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또한 제이필름(J Film)의 영상 제작 감독 정경욱씨가 동영상을 찍고 드론을 날려 생생한 기록영화로 만들 참이다. 그는 영화 ‘아버지의 전쟁’, ‘박열’ 등 수십 편의 영상을 제작한 제작자였고,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여러 차례 수상 경력도 지녔다. KBS ‘산’ 영상 단골 출연진인 김성선 대장과 가창오리 군무 사진 전문가 조수남 부대장이 참여하는 여행문화학교 ‘산책’에 대해 더 길게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함께 걷기를 원하는 일반 참여자들과 한 달 동안 몸 부대끼며 걷는 이야기를 작가는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이제는 금강이다』는 금강을 따라 걷는 것이 중심이다. 더 한다면 금강 주변의 문화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일이다. 금강과 더불어 흐른 이야기를 찾아 펼칠 참이다. 이를 위해 금강이 흐르는 금산, 세종특별자치시, 공주, 청양, 부여, 논산, 서천까지 7개 시•군의 문화원장과 식구들, 그 지역의 예총회장과 회원들이 모두 참여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이들은 그저 진행자들일 뿐이다. 이 글의 실제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금강 주변에 머물고 있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제부터 금강이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배어 있는지를 말해줄 차례이다. 그들이 이 행사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철저하게 관찰자가 되어 이 행사를 기록하려 한다. 하지만 탐사 과정에서 들은 얘기를 옮기는 데 제한을 두지 않을 참이다. 혹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로 상처가 된 이가 있다면 작가를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아픈 상처를 들춰내는 일에 익숙하지 못한 작가의 짧은 생각으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너그러이 혜량을 베풀어 주시기 바랄 뿐이다.(계속)
[사진 = 이정호 작가 ]